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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 Empire of Wealth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0. 10. 23. 17:07

    2006년인가, John Steele Gordon이 쓴 An Empire of Wealth(부제: The Epic History of American Economic Power)를 반디앤루니스 코엑스점에서 산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나는 영어 능력을, 특히 쓰기를, 크게 향상시켜야 할 상황에 놓여있었다. 이 책이 흥미롭다면, 나는 역사를 좋아하니까, 영어 공부가 덜 지루하리라 기대했다. 순진하고 허황된 판단이었다. 좋은 책 같았지만, 언제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를 단어들을 찾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할 것 같았다. 결국 서너 페이지를 읽은 뒤에 서가에 꽂아두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책들을 읽었다. 책을 마냥 좋아하는 것은 아니어서, 몰입해서 읽은 책들은 드물다. 무식한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 강박도 일종의 허영일 것이다. 최근에는 지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책을 멀리했다. 힘들 때는 기력이 회복될 때까지 쉬어야 한다. 책에 대한 강박이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다. 허영이니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새 책을 살 만큼 독서 열정이 되살아난 것이 아니어서, 읽지 않은 책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열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재활용통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드디어 An Empire of Wealth의 차례가 되었다. "이 책이 이리 재미있는 책이었나? 왜 그때는 몰랐지?" 그때는 지금만큼 빨리 읽을 수 없었고, "Sapiens"와 "총, 균, 쇠"를 읽기 전이었으니까.

    이 책이 내가 갖고 있던 한 가지 물음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영국의 식민지 국가 미국은 부유한 나라가 되었는데, 왜 스페인의 식민지 국가들은 여전히 가난할까? 미국 인구의 주류는 백인인데, 왜 중남미 국가들에서는 원주민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할까?

    간단히 말하자면, 이민 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영국은 스페인에 비해 가난한 나라였는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가 골치거리였다. 1660년대에 Virginia Company의 배에 오른 사람들은, 상당 수가 오래지 않아 죽었지만, 배삯을 나중에 갚는 조건으로 50 에이커의 땅을 받았다. 50 에이커는 약 6만 평이다.

    영화 Far and Away가 떠오른다. 그 이야기는 1890년을 전후하여 오클라호마에서 체로키로부터 사들인 땅을 나눠준 Land Run에 기반한다. 5년간 경작하는 조건으로 받은 땅의 크기가 무려 160 에이커, 약 20만 평이다. 올림픽주경기장을 포함하는 단지가 그 정도 넓이이다. 

    내가 태어난 시골 마을에 있는 모든 돈과 밭을 합해도 10만 평이 되지 않을 것 같다.

    1867년에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60만 평방 마일에 달하는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사들인다. 1 에어커(약 1200평)당 가격이 2센트라고 한다. 당시 1 센트의 가치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달걀 12 알에 20 센트였다는 것을 기준으로 하자면 삼사백 원에 불과한 것 같고, 한 달 하숙비가 2.79달러였다는 것을 기준으로 하자면 일이천 원이 넘는 것 같기도 하다. 계산하기 편하게 1 센트가 1224 원이라 치면 미국은 한 평에 2원을 주고 알래스카를 산 셈이다.

    * * *

    이 책이 경제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경제사 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 경제의 기반이 된 과학과 기술의 역사가 아주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총, 균, 쇠" 못지않게 훌륭한데도 이 책이 유명하지 않은 까닭은  한국어본을 낸 출판사가 마케팅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면기-운하-증기선-철도-전기-전보-신문-자동차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대단히 흥미롭다. 내가 격변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물 물을 마시는 초가집에서 내가 태어났을 무렵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기술들을 지금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세대 또는 나의 아버지의 세대에 와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증기 기관이 발명된 이후로 모든 세대가 그들의 아버지들이 젊은 시절에 사용했던 기술들이 낡은 것이 되어 더 이상 접할 수 없게 되는 그런 격변을 줄곧 거치며 살아왔다. 노인들이 가르쳐 줄 게 없어 존경받지 못하는 시대가 증기 기관과 더불어 탄생한 셈이다. "꼰대"라는 말도 그 무렵에 생긴 게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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