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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의 인류사적 패배에 대한 나의 가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8. 1. 9. 21:54

    그녀가 혼잣말 하듯이 내뱉었다. 맥주 마시고 싶다.” 현재 시각 23시. 못 들은 체했다. “맥주 마시고 싶어.” 난 자고 싶다. 저항할까 수 초 동안 고민하다가 곧 패딩을 걸쳤다. “감자칩도 사와.” 십수 년 동안 벌인 그녀와의 권력 쟁투에서 내가 패배했음을 시나브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신 안정과 평화가 집안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왜 나는 패배했을까?  지배권에 미련을 두고 있는 동안에는 나와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싸움이 끝나자 이제 그 까닭이 보인다. 수많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행복이 이루어지듯이, 한두 가지 우위에 있는 기술만으로는 싸움에서 승리를 차지할 수 없다. 그녀에게 승리를 안겨준 결정적인 특질은 지구력이다. 물리적 지구력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내가 승복할 때까지 나의 허물을 물고 늘어진다. 이런 싸움에서 논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기이다. 지구력에서 그녀는 나보다 강하다. 훨씬 강하다. 나는 밤새워 일해본 적이 없다. 못하기 때문이다. 놀며 밤새운 적도 거의 없다.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구력에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나를 압도한다. 

    흔히 여자가 남자보다 약하다고 생각한다. 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추위와 굶주림을 여자가 남자보다 더 잘 버틴다. 농촌에서 낱낱의 노동 강도가 남자만큼 강해 보이지 않을 뿐 여자들의 노동 시간은 남자보다 훨씬 길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남자 아이들은 턱걸이로, 여자 아이들은 오래 매달리기로 체력을 측정했다. 만약 모든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오래 매달리기 시합을 했다면 결과가 어떠했을까? 상위권 다수가 여자들이지 않을까? 여기에서 의문이 든다. 남성이 갖고 있는 특질들이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볼 수 없는데 왜 여성은 인류사적으로 패배하였을까? 심지어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더 똑똑해 보이는데. (최근 수 세기 동안 등장한 천재들 가운데 여자가 드문 것은 교육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다수가 받아들이는 이론이 아직 없다고 한다. 

    최근에 주워들은 몇 가지 이야기를 조합하여 이에 대한 가설을 제시해 보겠다. (이미 제시되고 반박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학자가 아니고 이건 사고 유희일 뿐) 인류는 생존 경쟁에서 다른 수많은 동물들을 압도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까닭이 높은 지능과 그로 인한 도구의 사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야구 방망이를 박살낼 수 있을 만큼 강한 턱보다 돌도끼가 우월할까? 한 지역에서 한 사람이 홀로 지내야 한다면, 그 유형이 어떠하든, 생존 경쟁에서 그보다 못한 동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마 너구리보다 더 자주 배고픔을 느낄 것이다. 인류를 강한 존재로 만든 것은 협업 능력이다. 협력하는 동물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범고래는 여러 역할을 분담하여 무리지어 사냥한다. 하지만 그 수가 기껏해야 두 자리에 머문다. 

    그 능력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우열을 만든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비결의 원천이 그것에 있다. 그 소수는 조직화되어 있고, 나머지 다수는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조폭이 무서운 거다) 여성의 인류사적 패배의 이유가 혹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남성은 어떤 사정 때문에 조직화되었는데 여성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나는 피라밋 같은 거대 건축물이 남성의 인류사적 승리의 징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여성에 비해 남성이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근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여성이 주도권을 차지했다면 거대 건축물의 형태가 사뭇 달랐을 것이다. 높게보다는 넓게, 큰 바위보다는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지구력을 과시하는 건축물들이 세워졌을 것이다. “너희 피라밋에는 겨우 이천만 개 짱돌이 쓰였네. 우리 거는 오억 개인데.”

    지구력보다 강한 근력이 요구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남성들이 조직화된 것이 아닐까? 그게 무엇일까? 사냥에는 근력도 필요하고 지구력도 필요할 텐데, 아무래도 결정적인 것은 근력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남성의 조직화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형과 기후에 따라 사냥감이 다를테니 사냥 방법도 다를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여성의 인류사적 패배를 초래했다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사냥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어디에서나 발생한 일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전쟁이라고 본다. 수렵채집인들이 부족 단위로 전쟁을 벌인 흔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이제는 군인의 근력이나 순발력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이미 기계들이 대체했다. 여전히 유리 천정이 있다고 말하지만  오래지 않아 여성은 패배자의 지위에서 벗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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