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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한 삶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3. 31. 12:27

    3월 25일 주진우 라이브에서 그가 박노자 교수에게 저출산 문제에 대해 물었다. 결혼과 출산을 피하는 이유는 삶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근로자 셋 중 하나가 비정규직이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8%가 되지 않는데, 유럽 선진국들은 15% 내지 35%에 이른다.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전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는 현재 내 삶의 질에 만족한다. 독립하려면 몇 해 더 걸리겠지만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부채에 비해 수입이 후하지 않으나 아내와 함께 벌고 있으니 감당할 만하다. 하지만 불안하다. 지금의 삶이 계속 유지되리라 확신할 수 없는 데에서 비롯되는 불안이다.

    보수가 적더라도 오래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무엇일까 이따금 생각해 본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하면 옷을 벗는 군대와 같지 않을지라도, 중년을 지나면 이런저런 사정으로 많은 이들이 직장을 떠나게 된다.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이 자신의 칼럼에서 인용한, 독일 정부의 "노동 4.0"이라는 백서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가 보다.

     미래의 노동시장은 오늘날과 상당히 달라질 것이 분명한데, 과연 오늘날의 상황보다 더 나을 것인가? 우리는 보다 자율적으로 우리의 노동을 결정하고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노동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인가? 50대에 다시 한 번 대학을 다니거나 새로운 직업을 가지기 위한 교육을 받게 될 것인가? 기계들은 우리의 직장을 앗아갈 것인가, 아니면 기계가 다양한 개선을 가능케 하고 생산력을 높이게 되어 새로운 직군을 창출하게 될 것인가?

    폴리텍 대학과 대부분의 기술 학원에서 무상으로 여러 기술들을 배울 수 있다. 정부가 재취업을 위한 교육 비용을 지원한 지는 꽤 오래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저금이 없는 상태에서 교육을 마치고 일자리를 얻기까지 (아마도 이전에 비해 보수가 크게 줄 텐데) 어떻게 버티냐는 것이다. 한 회사에서 20년 이상 일했다면 퇴직금이 넉넉할 것이다. 하지만 한 회사에서 그렇게 오래 일하는 사람들이 요즘에는 흔하지 않고, 대부분 회사를 옮길 때마다 퇴직금이나 퇴직 연금을 다 써버렸을 것이다. 빚이 없다면 좀 낫겠지만, 주택 대출 만기가 10년 내지 20년 남아 있기 십상이다.

    그러니 아마도 나는 기술 없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될 것이다. 벼룩시장 사이트를 보니 의외로 생산직 일자리가 많고 보수도 나쁘지 않다. 많은 경우 주 40시간 근로라는 호사는 포기해야 할 듯하지만.

    나는 왜 이런 고민을 할까? 내가 가진 기술을 계속 써먹을 수 없을까? 정년까지 실무자로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행운은 드물고, 이 문제의 본질은 근무 능력도 한계 생산 체감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내가 정점을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젊은 두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내 기술을 사줄 시장이 매우 작다는 것이다. 에어컨 같은 설비 관련 일들의 벌이가 좋다고 한다. 최저 임금이 크게 오른 탓도 있겠으나, 시장이 커졌기 때문이다. 에어컨이 필수품이 된 지는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우리 경제가 크게 성장한 탓이다. 하지만 내 일자리는 그와 비례해서 성장하지 못했다. 박태웅 의장이 그의 다른 칼럼에서 언급한 높은 실질 문맹률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글을 가까이하지 않는 문화에서 문서와 글쟁이를 중시할 리 없다. 반대의 상황이라면, 글쟁이를 찾는 기업들이 넘쳐난다면, 좋은 일자리가 아니어도 내 기술을 계속 팔 수 있을 테니, 재교육을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다.

    박태웅이 말한 대로, 경제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경제 성장률이나 일인당 GDP만으로 그 사회를 진단할 수 없듯이, 직업도 보수만 갖고 평가할 수 없다. 가능하면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일을 해보지 않아서 내 일이 내게 가장 잘 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무언가에 깊이 빠져본 적이 없고 그래서 아주 열심히 해본 적도 없다. 다만 어떤 일이든 평균적인 성실함으로 하려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미덕일 것이다. 

    어떻든 나의 현재 일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나의 잡다한 경험과 기술들을 입문자들과 공유하는 것이 만족을 느끼면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이 분야의 교육 사업에서 성장의 기미를 보기 어렵다.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갈수록 일자리가 양극화될 것이다.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과 그 기계를 운전하는 사람들, 또는 플랫폼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플랫폼 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전자에 속하지 않는다면, 학사 학위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 차이에서 별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전자에 속하려면 더 많이 배워야 할 것이다.

    지금 뭔가 결단하기에 다른 직업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내가 그 일들을 얼마나 좋아하고 잘 수행할지 알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의 삶이란 게 그렇지.

    우리의 복지 제도가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미흡하다고 하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다고 본다. 내 아들이 고등학교 무상 교육의 혜택은 받지 못했지만, 시 정부와 중앙 정부에서 대학 등록금을 보조받았고, 그 규모가 더 커질 것 같다. 그리고 기초노령연금이 해마다 조금씩 인상되는 것 같다. 걱정하지 말고 살자. 무엇을 도모하든 불안이 긍정적인 보상을 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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