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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정 (認定)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3. 31. 16:45

    타인의 주목을 받기 위해 유별난 짓을 하는 사람들을 "관종"이라고 한단다. 인정 욕구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있으랴만, 누구나 "유별난 짓"을 하지는 않으니, 그것이 관종의 기준점이겠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국가나 인종에 관계없이 누구나 인정 욕구를 갖고 있을 것 같지만 그 정도나 성격이 서로 비슷할지 궁금하다.

    흔히 서구는 개인주의이고, 일본은 집단주의라고 한다.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서구는 죄의식 문화이고 일본은 수치심 문화여서 일본인들에게는 죄의식이 없다고 했다. 죄의식은 내재화된 도덕이고 수치심은 외재적 규범이라고 한다. 근거로 대는 이런저런 사례를 보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우리 의식은 둘 중 일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에 가본 적이 없다. 그녀는 이차대전 중에 정부의 의뢰를 받아 소설을 포함하여 일본에 관련된 문헌들을 갖고 연구하여 그 책을 집필했다. 심리학적 관찰이나 실험은 할 수 없었으니 그 점에 대해 그녀를 비난할 수는 없다. 집단주의 또는 수치심 이론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주인이 잃어버린 또는 남겨둔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죄이다. 이를 점유이탈물횡령죄라고 한다. 외국인들이 상당히 놀라워하는 것들 중 하나인데, 우리는 남의 물건을 가져가지 않는다. 일본인들도 그렇다고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 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형법에 명시된 죄임을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집단주의 또는 수치심으로 이 의식을 설명할 수 있을까? 

    도덕심이 행동에 관여하는 방향은 두 가지이다.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 수치심이 죄의식보다 더 강력한 윤리 기제일까? 서구인들은 죄의식을 갖고 있는데 왜 주저하지 않고 점유이탈물을 가져갈까?

    우리가 관습을 통해 해야 할 것으로 배운 것은 장유유서와 효도이다. 장유유서 의식은 아주 강고하여 한 세기가 지나도 깨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에게 착한 사마리안 법은 없고, 관습에서도 그러하다. 그래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받을 일이 우리에게 없다.

    우리나라 같은 나라를 찾기 어렵다. 아주 가난한 나라에서 아주 부유한 나라로, 그것도 수십 년만에, 바뀌었다.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 나라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여러 면에서 같은 정도로 발전한 나라가 또 있나? 나는 박찬호와 박세리를 우리 사회의 전환점을 상징하는 인물로 본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시나브로 한국이 여러 분야에서 두드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유이탈물"에 손대지 않는 것을 우리가 이룩한 자랑스러운 성과 중의 하나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당연한 것이다. 잘 살게 되면 다 그렇게 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효율성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가 낮은 신뢰 비용이라고 한다.

    왜 한국은 훌륭하게 발전했고, 왜 우리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을까? 성공은 한두 성공 요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실패 요인들이 모두 해소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몇 가지 요소만으로 우리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인정 욕구에 주목한다. 우리의 인정 욕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유별난 것 같다. 인정받고 싶은 지점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가 강한 인정 욕구를 갖고 있다고 본다. 거의 모든 것을 서열화하는 경쟁 문화가 그 바탕에 있을 것이다. 우리를 남다르게 만든 것은 이 강한 인정 욕구와 결합된,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의식이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떳떳한 노력으로 인정받겠다"는 의식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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