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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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이름을 붙여 쓸 이유가 없다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6. 14. 10:36
한글 맞춤법 제48항에 따르면, 성과 이름은 붙여 쓰되, 성과 이름을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띄어 쓸 수 있다. 남궁억 / 남궁 억 이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답변 중 이런 것이 있다. "... 성과 이름을 띄어 쓰게 게 합리적이긴 하지만,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에서는 성명을 붙여 쓰는 것이 통례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붙여 쓰는 게 관용 형식이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성은 ... 거의 모두 한 음절로 되어 있어서 보통 하나의 단어로 인식되지 않는다..." 성과 이름을 붙여 쓰는 근거로 한자 문화권을 운운하는 것이 의미있는지 모르겠다. 몽골,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가 한자 문화권에 속한다고 하지만, 몽골은 키릴을, 베트남은 로마자를, 말레이시아는 로마자와 아랍 문자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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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값에 대하여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6. 8. 12:19
일반적으로 제품의 가격은 제조비(경상비도 포함한다고 치자)에 이익을 더하여 정해진다. 제조사들은 이익 비율을 어떻게 정할지 고민할 것이다. 제조비가 많이 들면 판가를 높여야 하는데 그러면 대신 덜 팔리기 마련이다. 제품이 많이 팔리면 제조 단가가 줄어드니 가격을 낮출 수 있다. 경영에 문외한이지만,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그래서 시장 가격을 주도하는 판가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삼성과 애플은 분명 훨씬 더 싼 가격에 스마트폰을 내놓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비싸도 잘 팔리는데 굳이 값을 낮출 이유가 있겠나. 팔리지 않는다고 마냥 가격을 낮출 수 없다. 겨우 제조비만 회수할 수 있다면 그 물건을 만들 이유가 없다. 나는 책을 살 때 가격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다. 책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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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친코를 읽고: 집단주의에 대하여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6. 4. 17:06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마 전학년을 통틀어 유일하게, 란도셀을 메고 다니는 여자애가 있었다. 가방이 이뻐서 내가 부러워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란도셀이 이차 세계 대전까지 일본 군인들이 사용하던 배낭과 유사하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황태자에게 선물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하니, 일본 초등학생들이 란도셀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 무려 백 년이 넘었다. 튼튼하여 오래 쓸 수 있다고 하나 무겁고 큰, 게다가 엄청 비싼 가방을 일곱 살 아이에게 지우는 것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모든 부모들이 란도셀을 사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백 년이 넘도록.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우리는 새로운 것들, 특히 기술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영하는 편이다. 한국 전쟁이 끝났을 때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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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친코를 읽고: 정체성에 대하여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6. 2. 12:26
한국계 미국인인 데이빗 강 교수가 이렇게 말하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그와 같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g2bAa3UfkOQ 독일은 다시 전쟁을 일으켰으니 나누자라고 했고 ... 왜 일본이 아닌 한국을 나눈 것일까요? 일차 세계 대전과 이차 세계 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한국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분명 김일성인데, 탱크를 비롯하여 절대적으로 우세했던 그 무기들을 그는 어떻게 장만했을까? 한국 전쟁을 제국주의 연장전이나 대리전으로 보는 것에 대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분단되지 않았다면, 소련에 의해 공산 국가가 되었을지도, 아니면 베트남처럼 오랜 내전을 겪었을지 모른다. 어느 것도 다른 것보다 나은 결과라 말할 수 없다. 공산 국가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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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친코를 읽고: 집단 의식에 대하여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6. 1. 12:22
3 주만에 5백 페이지가 넘는 Pachinko를 다 읽었다. 이것이 내게는 대단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영어로 된 책을 한 달 안에 끝낸 적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Cosmos 같은 어려운 책은 말할 것도 없고, 깊이 매료되었던 Revenant도 마치기까지 두세 달 넘게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TV 드라마에 빠진 할머니들이 하듯이,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아내에게 선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들려줬다. 영화광이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하는 것과 같은 추측을 파친코는 허용하지 않는다. 선자가 고 한수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파친코 표지에 실린 여러 언론의 찬사들 중 내가 가장 공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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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seki와 Cho-seki (Pachinko 중에서)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5. 11. 09:31
서가에 Pachinko 원서와 번역서가 나란히 꽂혀 있다. 아내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아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일하는 알음알이가 있기 마련이고 아내가 그들과 서로 책을 나누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얻어온 책들이 많다. 하지만 원서까지 있는 까닭은 모르겠다. 나이 들수록 소설에 흥미를 잃어 좀처럼 읽지 않는데, 이 작품이 유명하다 하여 원서를 뽑아 들고 첫 장을 읽어 보았다. 읽을 만하겠다. 이런 구절이 있다. "Down the street, that dirty dog Lee-seki won't cough up what he owes ..." "Lee-seki"가 뭘까? "이세기"라는 인명일까? 그런데 다음 페이지에 "Cho-seki"가 나온다. 번역서를 꺼내서 같은 대목을 찾았다. "이가 놈"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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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4. 21. 12:29
지난 가을인가, 봄날의책방을 예고 없이 방문한 지인들이 묵을 곳이 없어서 우리의 봉평아파트를 빌릴 수 있는지 대표가 서로의 지인을 통해 아내에게 물었다. 비어있는 집이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 손님들이 감사의 인사로 봄날의책방에서 산 책 몇 권을 남겨두었다. 아내가 일하는 출판사에서는 새 책이 나올 때마다 다른 팀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아내가 두어 달에 한 번씩 가져오는 책들이 쌓여 두 벽면을 가득 채웠다. 아내가 책 몇 권을 챙겨서 그 손님들이 다녀간 두 주 뒤에 통영에 내려갔다. 봄날의책방을 찾아가 그 책을 선물했다. 초면이어서 나눌 얘기가 없었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그가 답례로 그림 엽서 두 장을 건넸다. 내가 그 그림들을 보며 아주 즐거워하자, 아내가 그 책방에 다시 들어가 "구멍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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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파와 비둘기파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4. 8. 11:37
매파와 비둘기파가 평형을 이루는 비율이 7:5라고 하는데, 개체 분포가 그렇다는 설명도 있고, evolutionary stable strategy로서 두 가지 전략을 저 비율로 섞어 쓰는 것이 최선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한 환경에서 경쟁자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매파의 수와 비둘기파의 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하지만 경쟁자가 하나라면? 1. 매파 : 매파 결과는 둘 중 하나이다. 생존 자원을 획득하거나 상실하거나. 2. 매파 : 비둘기파 생존 자원을 획득한다. 3. 비둘기파 : 매파 생존 자원을 상실하다. 4. 비둘기파 : 비둘기파 생존 자원 절반을 차지한다. 매파 전략을 취할 때 생존 자원이나 주도권을 차지할 확률이 75%이고, 비둘기파 전략을 취할 때 25%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