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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압기를 대여받기까지과학적이거나 기술적인 2020. 8. 28. 10:06
나의 코골이가 지독하다고 아내와 아들로부터 종종 핀잔을 들었다. 잠들었으니까 얼마나 심한지 나는 알 수 없다. 이월에 아내가 동료로부터 양압기에 보험이 적용되어 저렴한 비용으로 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을 듣고, 내게 이비인후과에 가보라고 권했다. 지난 겨울부터 하룻밤에 여러 차례 잠에서 깼다. 그것이 무호흡 때문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몽롱하게 보내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그 문제가 아니라면 아내의 권유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양압기를 받기까지 여러 단계의 절차를 거치는 데에 수개월이 걸릴 것임을 알았더라도 시도했을지 모르겠다.
이월
사무실에서 가까운 이비인후과 의원을 찾았다. 양압기를 처방받으려면 수면다원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큰 병원에서만 가능하단다. 의사가 진료 의뢰서를 써 주며, 지하철로 세 역 거리에 있는 한 병원을 추천했다. 하룻밤을 병원에서 자야 한다는 것을 그녀가 알려주었다면 구태여 그 병원에 예약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에 예약했다.
삼월
예약한 날에 대학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이비인후과를 거치지 않고 의뢰서를 갖고 수면센터를 찾아가도 된다. 마침내 양압기를 수령하게 된 날에 양압기 업체의 직원으로부터 나와 함께 설명을 들은 사람이 그렇게 했다. 그는 나보다 적은 단계를 거쳤지만 검사 결과가 보험이 적용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더 많은 비용을 치렀다. 대기자가 많아 삼 개월 뒤에 수면 검사가 가능했다. 다른 검사들도 받아야 했는데 그 역시 대기자들이 많아 알레르기 검사만 받고 돌아왔다. 약 이 주 뒤에 병원을 다시 방문하여 CT, 폐기능, 엑스레이 검사를 받았다.
유월
밤 아홉 시가 되기 전에 수면 센터에 도착했다. 검사원이 스무여 개의 센서들을 머리부터 발목까지 주렁주렁 부착했다. 새벽 세 시 무렵인가 깼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다섯 시가 되자 검사원이 내 몸에서 센서들을 제거하고 여러 그래프로 이루어진 모니터 결과를 보여주었다. 무호흡이 길어지면 뇌가 몸을 깨우고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게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부정맥이나 고혈압 같은 다른 질병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당연히 심장에도 좋지 않다고. 그가 나의 숨소리도 들려주었다. 옆 자리에 있는 동료의 코골이 때문에 잠들지 못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보다는 내가 덜 심한 것 같다. 식구들의 고통과 불편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아침 여섯 시에 머리를 감고 나왔다. 채혈실이 문을 여는 일곱 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약 열흘 뒤에 병원을 다시 방문했다. 나는 그날 의사가 양압기를 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양압기가 도움이 되는지 보기 위한 수면 검사를 또 해야 한단다. 포기하고 싶다!
팔월
두번 째 수면 검사에서, 한 번 겪었는지라, 처음보다 잘 잤다. 양압기가 내뱉는 바람의 세기가 의외로 강하다. 하지만 그 압력은 손가락 힘만으로도 막을 수 있는, 실제 우리가 호흡하는 것과 같은 정도라고 한다. 의사가 내게 양압기를 건네주기를 기대하면서 두 주 뒤에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가 말하기를, 양압기 처방전을 써 줄 테니 양압기 업체를 알아보란다. 짜증이 솟는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안내해주겠다고 내게 말했다. 검사 기록을 발부받아 수면 센터로 가란다. 맥헬스케어라는 업체의 직원들이 나를 맞았다. 의사가 수면 센터와 업체의 관계를 모르는 건지, 알고도 원칙만을 내게 알려준 것인지 모르겠다. (수면 센터를 운영하는 주체가 병원인지 업체인지 알쏭달쏭하다.)
내가 업체를 수배하여 양압기를 구하고 건강보험공단에도 신청하는 게 원칙이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대행하겠단다. 내가 받은 양압기 (Continuous Positive Airway Pressure)는 필립스 제품이다. 그들의 주장으로는 가장 비싸고 (최저 250만 원) 가장 좋은 것이다. 월 대여료가 팔만 원이 넘는데, 나는 만팔천 원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건강보험이 부담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건강보험의 지원을 받으려면 제공된 양압기를 내가 성실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한 달에 20일 이상, 하루에 네 시간 이상 그 기기를 사용해야 한다. 양압기에 로그 기능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의사가 정한 날에 기기를 들고 병원에 가서 업체 사람을 먼저 만나야 한다. 그러면 그가 나의 사용 기록을 기기에서 뽑아낼 것이다. 내가 언제까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사용 기록을 보고해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의사에게 달려있다.
코 마스크와 튜브는 소모품이다. 수명을 다하기 전에 내가 코 마스크를 망가뜨린다면 제값을 내고 새 것을 구매해야 한다.
양압기를 유지하는 데에, 예상보다 더 잔손이 가고 별도의 비용이 요구된다.
1) 두 가지 필터가 있는데, 하나는 한 달마다 청소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한 달마다 교체해야 한다. 그 업체는 필터를 무상으로 제공한단다.
2) 여름인데도 서너 시간 쓰니 코가 마른다. 그 때문에 양압기에 가습 기능이 있다. 반드시 증류수를 사용하란다. 다섯 단계로 그 양을 조절할 수 있는데, 3으로 맞춰놓으니 마스크에 습기가 차고 코가 근질거린다. 1로 낮추었다.
3) 마스크와 물통을 젖병 세정제를 이용하여 매일 세척하는 게 좋단다. 아침에 그럴 겨를이 있나! 한두 번 시도하다가 주말에만 씻기로 마음먹었다.
결론을 내기 아직 이르지만, 효능을 아직 크게 느끼지 못했다. 양압기를 쓰고 같이 잔 이튿날 코를 골지 않으니 신기하다고 아내가 말했지만, 계속 각방을 써야 할 것 같다. 도리어 내가 불편하다. 마스크와 튜브 때문에 곁에 아무도 없는 편이 낫다.
이제까지 다 해서 약 50만 원이 들었다. 진료 기록을 발부받아 (실비) 보험사에 청구하였다. 며칠 뒤에 보험사가 30만 원을 지급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니 나쁘지 않다.
여전히 새벽에 깬다. 무호흡 때문은 아니고, 더위와 마스크에 끼는 습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 때는 잘 들리지 않던, 바람을 만들어내는, 양압기의 소음도 고요한 새벽에는 크게 들린다. 그래서 세 시나 네 시에 깨면, 사용 시간을 확인하고 기기를 꺼버린다. 그래도 지난 겨울에 비해 한결 덜 자주 깨는 것 같다. 가을이 되면 개운한 아침을 맞이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이들도 그렇겠지만,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를 위해 쓴다, 날 위해서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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