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
장수대에서 한계령까지산행 2024. 11. 4. 10:03
단풍을 기대하고 장수대를 찾지 않았다. 거리가 대략 13 킬로미터라고 하니, 걸을 만하리라 싶었고, 너덜길이 어떠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날이 흐렸다. 오를수록 안개가 짙어졌다.대승령에 먼저 도착한 일흔을 넘긴 듯한 분이 내게 물었다."어디로 가세요?""한계령이요. 남교리로 가세요?""네, 양양에 비가 온다고 해서."아이폰의 날씨 앱이 오전에 한 시간 가량 5 밀리미터 정도의 비를 예상했다. 설악산 같은 높은 산 속에서의 날씨가 일기예보에 맞게 변하리라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다. 장수대로부터 몇 백 미터 위에서 본 풍경이 실은 지옥의 천사가 내게 고지한 것이 아닐까 싶다.능선의 북쪽에서 부는 바람이 거셌지만 운무가, 한계령으로 내려올 때까지, 걷히지 않았다. 대승령을 지난 얼마 후에 내리기 시작한 가는 빗..
-
울산바위산행 2024. 10. 7. 09:09
설악산 소공원 입구까지 2.3 킬로미터 남겨둔 지점에 넓은 무료 주차장이 있다. 시월이 산객들이 가장 많은 철인지라 거기에 차를 댔다. 길 건너에, 이미 오래 전에 폐업한, 여러 숙박업소들이 있다. 중학교 수학여행의 마지막 밤을 그 중 한 곳에서 보낸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이후 처음으로, 정확히 사십 년만에, 아내와 함께 흔들바위를 찾았다.대여섯이 줄다리기 하듯 박자를 맞춰 밀면 바위가 흔들린다고 하는데, 정말인지 모르겠다. 소년이었을 때에도 지금도 혼자 힘만으로는 역부족인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흔들바위에서 울산바위 꼭대기까지 약 1 킬로미터를 올라야 한다. 그녀를 흔들바위에 남겨두고 홀로 출발했다. 예상보다 훨씬 힘겨웠다. 롯데타워에 2917 개의 계단이 있다고 하는데, 울산바위의 계단이 그보다 적..
-
토왕성폭포산행 2024. 10. 2. 09:29
지난 밤에 이미 산행을 채비하여, 두 개 물병에 물을 채우고 나니 더 챙길 것이 없었다. 네 시 반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내를 깨웠다. 다섯 시 전에 출발하리라 기대하였지만, 늘 그랬듯이 그녀의 늑장 때문에 다섯 시 십 분을 넘겨서 차에 올랐다. 설악산소공원까지 가는 내내 그녀가 시체처럼 잠에 빠졌다.여덟 시를 조금 넘겨 도착했을 때, 예상한 대로 주차장이 벌써 거의 다 채워져 있었다. 공원 입구 앞에, 기념품도 파는 식당에서 한참을 기다려 그녀가 주문한 카페 라떼를 받았다. 쌍천을 건너는 다리로 향하면서 그녀가 한 모금 마시고 내게 건넸다. 며칠 묵은 탄 누룽지에 녹은 아이스크림을 섞은 것과 같은 맛이다. 커피 기계가 고장났다 보다. 그 영감님이 만들 줄 모르든가. 주저 없이 버렸다.비룡폭포까지 2..
-
십이선녀탕 계곡산행 2024. 7. 15. 09:52
폭포들만 구경하고 내려가려 했다. 여러 폭포들을 지나, 출발지인 남교리 주차장까지 5.3 킬로미터, 그리고 대승봉까지 3.3 킬로미터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나기 전까지, 딱히 대승령까지 갈 생각이 없었다. 다만 그렇게 멀지는 않다 여겼다. 하지만 두어 시간 뒤에 가까스로 능선에 도달했을 때, 실망스럽게도 그곳이 대승령이 아니었고, 1.3 킬로미터를 더 가야 했다. 잠시 숨을 고른 뒤에 300 미터를 더 갔다. 대승령까지 완만한 내리막처럼 보였지만. 돌아오는 길이 몹시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발길을 돌렸다. 내려오는 길이, 이상하게도, 예상보다 길었다. 주차장에 이르러 내 아이폰을 꺼내 건강 앱을 열었다. 이정표대로라면 내가 걸은 거리가 15 킬로미터 안팎일 것이다. 하지만 앱이 보여준 거리는 19.5 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