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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크니컬 라이터로서 나의 업에 대한 소회
    테크니컬 라이팅 2025. 4. 3. 11:44

    서가를 뒤지다가 테크니컬 라이터가 되려는 당신에게를 발견했다. 누군가 내가 나의 일을 어떻게 해왔는지 묻는다면, 비록 업으로서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책에 실린 편집자의 변이 장황해질지 모를 나의 답변을 갈음할 만하지 않나 싶다.

    Technical writing이 직업으로서 한국에 소개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이 일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여전히 생소하다. 이 분야에서 Technical witer를 애써 '기술 작가' 같은 말로 표현하는 이들이 드물고, 심지어 '설명서'보다 '매뉴얼'이란 말이 더 많이 쓰인다.
    어떤 말을 사용하든 추가 설명 없이는 사람들이 이 일의 성격을 곧바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테크니컬 라이터들이 굳이 적절한 우리말을 찾아 옮기려 애쓰지 않았다. 그러한 사정 때문에 이 책 역시 저 말들을 '테크니컬 라이팅'과 '테크니컬 라이터'로 옮기었지만, 옹색한 변명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어에서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외국에서 온 많은 용어들과 표현들이 그대로 쓰이고 있다. 보편적이지 않은 용어가 그 말을 사용하는 집단의 울타리 안에서만 제대로 이해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좀처럼 의식하지 못한다.

    이 책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테크니컬 라이터들을 위해 작성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테크니컬 라이터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일반적인 언어로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없다면, 여러 계층의 제조자 집단과 사용자 집단 사이에서 자신들이 통역자 역할을 하노라 주장하기가 겸연쩍을 것이다. 테크니컬 라이터들 사이에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할지라도 '기술 작가'나 다른 비슷한 말들이 점차 더 흔하게 사용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테크니컬 라이터로서 경력을 시작할 무렵에 기술 글쓰기에 대해 가르쳐 줄 사람이나 기관이 없었고 지금도 많이 다르지 않다. 나와 내 동료들은 스스로 배우기 위한 방법으로 2000년에 출간된 이 책의 3판을 찾아내었다. 그 책은 테크니컬 라이터들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지침들을 담고 있었지만, 당시에 워드 프로세서조차 능숙하게 다루지 못했던 우리는 그것들이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상세하고 낮은 수준의 업무 매뉴얼이 절실했다. 이를테면, 첫 장에 어떤 내용을 담고 담지 말아야 할지, 절 제목 다음에 설명 없이 곧장 삽화를 두어도 되는지, 본문에 적절한 폰트 크기는 무엇인지, 삽화에 콜아웃 번호를 시계 방향으로 아니면 지그재그로 달아야 할지, 기술 용어를 알파벳으로 표기할지 아니면 음차할지와 같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두고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그 숱한 시시콜콜한 문제들에 대해 나름의 답을 얻기까지 그래서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보기까지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다.

    2009년에 4판이 나오면서 제목이 Writing and Designing Manuals에서 Writing and Designing Manuals and Warnings로 바뀌었고, 공동 저자였던 린 에터(Ryn Etter)가 빠졌다. 내용은 크게 바뀌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새로 작성되었다. '기계 번역'을 비롯하여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시도들에 대한 논의들이 추가되었다.

    이 책은 의심할 여지없이 입문자에게는 물론이고 숙련된 테크니컬 라이터들에게도 훌륭한 교범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책을 번역하여 출간하는 것은 그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현재 테크니컬 라이터들은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좋은 설명서는 이론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고 서비스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만약 한두 기업에서 테크니컬 라이터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입증한다면 다른 기업들도 테크니컬 라이터들을 채용할 것이다. 그러나 충분한 경험을 쌓기 전에 초보 테크니컬 라이터들에게 그것을 증명하라는 요구와 기대가 주어진다. 애석하게도 아주 많은 기업들이 매뉴얼 개발을 위한 투자에 인색하다. 대부분의 성마른 기업들은 테크니컬 라이터들이 문서화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를 훈련하고 향상시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그 조급함이 테크니컬 라이터들을 양성할 수 있는 선순환 엔진의 시동을 막고 있다. 우리가 이 책이 많이 읽히지 않으리라 판단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테크니컬 라이터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마지못해 매뉴얼을 작성하는 개발자들에게 우리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테크니컬 라이터가 되려는 당신에게』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놓는 첫 징검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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