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컨 버튼 하나의 기능이 바뀌었다. 당연히 이름(라벨)도 바뀌었다. 옆에 앉은 친구가 이에 대한 짤막한 문장 하나를 만들어 내게 주며 영어로 바꾸어 달란다.
각 리모컨 버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 매뉴얼을 열어봤다. 그것에서 쓰인 문체를 따르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으면 각 문장의 문체가 제각각이 될 것이다. 허튼 걱정이었다. 이미 제멋대로 놀고 있다.
Displays/selects/Returns/Changes/Adjusts/Opens ...
Link to ...
Buttons used in ...
Use these buttons ...
Connect to
XXX lets you ...
여기서 어법에 맞는 것으로서 취할 수 있는 것은 "Use these buttons"와 "XXX lets you"뿐이다.
영어에서 주어를 생략하기도 하는가? 그렇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는 뒤이어 나오는 문장들의 주어가 맨앞의 문장에 제시되어 있다. 그러니까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This button ..." 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명령문을 써야 한다.
소니 매뉴얼을 보니 가장 많이 쓰인 표현이 "Press to verb ..."인데, 목적어를 생략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우리말에서는 그래도 되지만 (아마도 일본어에서도) 영어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 표현을 쓰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다음 중 하나를 따라야 할 것이다.
1) Press this button to verb ...
2) Use this button for ...
3) These buttons are used to verb ...
4) This button verb (turns, changes, ...)
5) This button allows the user to verb ...
"전원 버튼이 기기를 켜거나 끈다"라는 표현은 어색하지 않다.
"볼륨 버튼이 소리를 키우거나 줄인다"라는 표현도 괜찮다.
그런데,
"HDMI 버튼이 HDMI 입력을 선택한다"는 표현은 이상한다.
버튼을 누르는 행위가 단순하고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버튼을 주체로 삼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기 또는 사용자가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YouTube라는 버튼이 있다고 하자. 우리말로 "YouTube" 버튼이 YouTube로 연결합니다"라고 적고 이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영어로 옮겨 보자.
The YouTube button connects to YouTube.
목적어가 없으니 이상한데, 목적어를 넣자니 뭘 목적어로 해야 할지 난감하다.
아래처럼 써야 하지 않겠는가?
This button allows you to use the YouTube web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