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6. 10. 12. 10:28
어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 내게 플라톤주의적 성향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나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웠던 나의 호불호가 이해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들 대부분이 처음에 나를 아주 삐딱하거나 냉소적인 사람으로 인식한다. 나는 그런 상황을 억울하다 여기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개선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치와와 같은 작은 종의 개들을 싫어한다. 왜 싫어하는지 몰랐다. 이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으랴만, 나는 좀 크게 연연하는 편이다. 예를 들자면, 많은 사람들이 갓난 아기나 어린 새끼 동물들을 어여삐 여긴다. 그리고 친한 사람의 아기나 애완 동물이라면 그들에게 더 귀여워 보이는 듯하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잘생겨야 좋아한다. 덧붙여 단지 형상적 아름다움만으로는 내가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았나 보다. 무의식적으로 아름다움이 갖춰야 할 여러 요소들을 따졌던 것 같다. 작은 종의 개들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아름답지 않기 때문인데, 그것들을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 까닭은 "충분히 강함"을 또는 "약하지 않음"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고 못생긴 개보다는 크고 잘생긴 닭을 키우고 싶다.
이걸 좀 더 그럴듯하게 설명해보겠다.
이 방사형 차트가 보여주듯이, 아름다움의 이런저런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그 모습이 아름답지 않다. 세 가지 요소가 있다면 정삼각형에 가깝고, 여덟 가지 요소가 있다면 정팔각형에 가까워야 한다. 크기는 덜 중요하다. 물론, 각 요소들이 충분히 갖추어진 상태, 차트에 비유하자면 바깥쪽에 가까운 그래서 더 큰 상태가 최선이다. 그렇지만 나는 전체적으로 크더라도 몇몇 요소들이 크게 결여되어 균형을 갖추지 못한 것보다 작더라도 균형을 이룬 것을 더 아름답게 여긴다.
사람들이 나를 곡해하는 까닭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가 너무 많은 아름다움의 필수 요소들을 갖고 있는데 반해,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균형의 지점을 남들에게 잘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이 미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려나?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남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서 남들을 납득시키려는 것보다 내가 양보하는 것이 더 좋을지 모른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쉽게 포기되는 것이라면 진작에 이렇게 발전되지 않았을 테니까.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0) 2017.02.03 이것이 생물학이다. (1) 2017.01.17 Sapiens (0) 2016.09.25 신분 세탁 (0) 2016.09.16 The Revenant (0) 201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