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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2. 10. 4. 07:15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원작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한데) 척화파인 김상헌의 "말"과 주화파인 최명길의 "말"이 이야기의 줄기를 이룬다. 영화에서 인조는 평범한 왕으로 보이지만, 이 책에 따르면 그 참변을 초래한 책임을 가장 크게 져야 할 사람이다.
인조는 왕위에 집착했다. 쿠데타로 왕위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늘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척화파와 주화파를 번갈아 만나 그들의 주장에 호응하며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사소한 문제까지 직접 다루었지만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모든 신하가 자기 편이 되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어느 신하도 믿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으면 믿지 않았다. 청군의 수가 많다는 것도, 청의 태종 홍타이지가 온 것도, 거대한 홍이포가 망월봉에 설치되었다는 것도 믿지 않았다.
그 전에, 정묘호란 뒤에, 의주와 정방산성을 두고 어느 쪽의 재건에 집중할지 수 년의 시간을 끌고도 결정하지 못했다. 인조가 일찌감치 강화에 자리잡았다면 이후 사태가 달라졌을 수 있다. 강화도에 가지 못한 것은 김류의 판단착오 못지 않게 인조의 우유부단이 큰 탓을 차지한다.
남한산성이 무슨 용도로 지어졌는가 의아했는데, 팔도 병력의 집결지로 의도되었다고 한다.
"빨리 와서 왕을 구하라."
이게 군사 명령서인가? 아무런 전략 없이 각 도에서 올라온 병력이 각개 격파된다. 인조는 끝까지 총사령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몰랐던 이야기. 강화도를 수비하던 수군이 홍이포의 위력에 놀라 달아난다. 곧 청군이 강화도를 함락한다. 삼궤구고두례의 항복 이후에 인조는 청군의 호위를 받으며 남한산성이 아니라 한성으로 돌아간다. 남한산성에 남은 사람들은 청군의 사냥감이 되었다. 기병을 주축으로 하는 군대는 주요 보급 수단이 현지 약탈이다.
임진왜란을 치른 지 40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리 무방비가 되었을까? 유교가 종교가 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척화파는 뭐든 주화파의 탓으로 돌렸다. 병사(兵使)에게는 패전의 책임을 묻지만 정치 장교인 감사(監司)는 승진한다. 270년 뒤에 완성되는 멸망의 길을 조선이 이때 걷기 시작한 게 아닐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겠으나 저자들의 상상력으로 보태진 독백과 대화가 다소 많은데 그것이 내게 약간의 흠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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