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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열가로서 챗지피티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3. 10. 30. 16:44
한 지인이 말하길, 그의 동생이 영어 번역사인데 챗지피티 때문에 일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일은 "번역"이 아니라 "교열"을 말한다. 흔히 review라고 하지만, 교열에 가장 근접한 말은 edit이다. 많은 경우에 번역된 문서들을 다른 번역사들이 절반의 비용으로 교열한다. 번역 회사가 15만 원을 청구했다면, 10만 원이 번역비이고, 5만 원이 교열비라는 뜻이다. 챗지피티가 제대로 교열한다면 번역 회사는 33 퍼센트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한 문장씩 챗지피티에게 고쳐달라고 할 수는 없을 테고, 아마도 챗지피티가 제공하는 API를 사용해야 할 터인데, 그 방법은 모르겠으나, 내가 기대하는 스타일을 설정할 수 있다면, 챗지피티가 꽤 신뢰할 만한 교열가가 될 듯하다.
매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열 중에 두셋은 기대 이상이다. 위 예에서 detect를 determine으로 고친 것에 탄복했다. whether가 detect와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구글을 뒤져보니 veer off가 관용구처럼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intended path"는 좀 과한 것 같아 아래와 같이 줄여쓰기로 했다.
The EPC sensors determine whether the separator has veered off course.
만들어본 적이 없는 표현, 또는 우리말로 옮기면 어색해서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그래서 쉽게 떠오르지 않는, 이를테면 serve as 같은 표현을 지어내는 데에 챗지피티가 도움이 된다.
챗지피티의 단점은 너무 현학적이라는 것이다.
He studied lierature and aesthetics.
챗지피티에게 맡기면 이렇게 고친다.
He delved into the realms of literature and aesthetics.
다시 고쳐달라 하면,
He pursued studies in literature and aesthetics.
우리는 "전공했다"는 뜻으로 겸손하게 "공부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이것들은 오히려 부적절하다.
오랜만에 의뢰받은 일을 영어로 작성하면서, 치밀하게 작성하지 않으면 한국어 문서를 영어로 정확하게 옮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인 요인은 수이다. "분리막"을 "a separator", "separators", "the separator" 또는 "a piece of separator" 중 어느 것으로 옮기는 것이 적절한지, 충분한 설명이 앞에 있지 않으면, 번역사가 제대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번역사들은 대개 시간에 쫓긴다. separator membrane 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번역사가 알아차리도록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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