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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속성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0. 4. 22. 11:54
칼에 베었을 때 겪는 고통이 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고통이 칼이 가진 속성 중 하나라 해야 할까? 그렇다면 고양이를 어루만지며 느끼는 흐뭇함은 고양이에게서 온 것이고 따라서 그 유쾌함이 고양이의 속성이라 해야 할까? 그렇다면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누구나 즐거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경외하지만 개나 고양이와 같이 살고 싶지는 않다.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오롯이 음악이 갖고있는 게 아니다. 음악에서 기쁨을 느끼는 기질을 결여한 나에게 그것이 내게 주는 행복은 시시하다. 무언가 광적으로 좋아했던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흥분으로 채워진 순간들도 내 기억에서 찾기 어렵다. 아무 재능도 없어서 아무 것도 좋아하지 않았는지, 아무 것도 좋아하지 않으니 아무 것도 익히려 애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행복은 누군가가 또는 무언가가 내게 주는 것이 아님을 이제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면 즐거움이 따라온다. 아내가 BTS를 좋아한다. 그 쾌감의 실마리는 BTS에 있으나 그것을 기쁨으로 만든 것은 그녀이다.
좋아하는 것이 많을수록, 사랑하는 것이 많을수록, 재주가 많을수록 더 행복할 것이다. 갖고 싶은 것들이 많을수록? 그건 모르겠다.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기보다 애정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 억지로 무언가를 좋아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조금이라도 마음 가는 것에 더 마음을 써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내 여생이 마른 개울 같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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