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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체르노빌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0. 2. 24. 16:24

    사고 수습을 지휘하는 핵물리학자 발레리 레가소프가 말한다.

    "이것은 마치 히로시마에 떨어진 것의 두 배가 되는 핵폭탄이 매일 터지는 것과 같습니다."

    원자로 아래에 있는 탱크를 비우기 위해 수문을 여는 작업에, 방사능 피폭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지원한 세 명 덕분에 발생할 수 있었던 추가 폭발을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머지 원자로 세 기가 모두 폭발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 주변에 있던 나라들, 벨라루스, 키예프, 리투아니아,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심지어 동독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히로시마 급의 핵폭탄 1600 개가 터진 셈이니 회복하기 어려운 재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고는, 기술적인 것은 잘 이해되지 않지만, 제어봉 끝에 흑연이 달려있다는 기술적 결함과 승진을 위해 무모하게 안전 테스트를 강행한 관리자의 잘못된 결정이 어우러져 발생했다. 그 테스트를 포기했다면 그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렇다 해도 동일한 제어봉이 적용된 다른 열 여섯 기의 원자로 중 하나에서 사고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는 흑연에 대해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바로잡아 주었다. 흑연이 감속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흑연이 없으면 핵분열이 지나치게 급격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그 속도를 늦춰주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실은 중성자가 너무 빠르게 움직으면 핵과 충돌하지 못한다고 한다. 흑연이 중성자가 핵과 충돌할 수 있게 해준다. 흑연이 없으면 도리어 핵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핵분열을 멈추게 하는 것은 제어봉인데 붕소로 이루어져 있다. 붕소가 중성자를 흡수한다고 한다. 제어봉이 잘못 설계되었다는 것은, 잘못된 안전 테스트로 인해 과열을 방지하는 다른 모든 요소들이 사라진 상태에서, 제어봉을 다시 삽입하기 시작했을 때, 흑연이 먼저 진입했고, 그로 인해 순식간에 고열과 수증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수증기의 압력이 제어봉의 하강을  막았고, 결국 그것을 진정시킬 수 있는 붕소가 내려가지 못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붕괴가 체르노빌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IAEA를 비롯한 학계에서는 후쿠시마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의 양이, 더 심각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체르노빌의 10% 수준으로 본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그것은 히로시마 급 핵폭탄 40개가 터진 것과 맞먹는다.

    * * *

    마지막 편을 다시 보았다. 안전 테스트는 발전소에 전력이 끊긴 상황에서 원자로를 안전하게 중단시키는 것이었다. 발전소에 전력이 끊긴다니? 좀 깊이 생각해보면 발전소도 전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전소가 처음 지어졌을 때 그리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가동을 중지했다가 다시 시작할 때, 외부에서 공급되는 전력이 없다면 가동을 시작할 수 없다. 체르노빌 발전소는 완공된 지 불과 3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안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완공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드라마에서는 안전 테스트가 성공했다고 거짓으로 보고하고 안전 테스트를 계속 시도한다는 증언이 나온다.

    천재지변이나 전쟁에 의해 전력이 끊긴다면, 냉각수를 공급하는 펌프가 멈추게 된다. 원자로 안의 물이 곧 수증기가 되어 모두 말라버리고 원자로 반응성이 높아진다. 세 대의 디젤 발전기가 있지만 그것들이 충분한 전력을 공급하기까지 1 분이 걸린다. 1 분이 너무 긴 시간이라고. 대안은 아직 회전하는 터빈을 이용하여 그 1 분 동안 급수 펌프를 돌리는 것이다. 그 테스트는 700 MW 출력에서 시작해야 했다. 평소 출력은 3200 MW이다. 테스트를 위해 1600 MW까지 출력을 낮춘 상태에서, 월말에 생산 목표량을 달성해야 하는 공장들의 요청에 의해, 테스트가 10 시간 지연된다. 폭발은 1986년 4월 26일 01시 24분에 발생했다. 원자로에는 제논이 발생하는데 그것이 반응성을 떨어뜨린다. 정상 상태에서는 제논도 타버리지만 1600 MW 이하에서는 제논이 쌓인다. 

    출력을 700 MW까지 낮추는 것이 목표였지만 계속 더 떨어진다. 출력이 떨어지자 온도가 낮아지고 수증기도 줄어든다. 그로 인해 반응성은 더욱 떨어진다. 출력을 올리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제어봉을 조금씩 뽑아낸다. 이백다섯 개가 분리되고 여섯 개만 남는다. 반응성 브레이크 역할을 하던 요소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러자 출력이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한다. 원자로가 핵폭탄이 되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AZ-5 버튼을 눌러 제어봉을 다시 삽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는 AZ-5 버튼은 비상 정지 버튼이 아니라 핵폭탄의 격발 버튼이다. 위에서 언급한 제어봉 끝에 달린 흑연 때문이다.

    법정에서 왜 그런 제어봉을 사용하냐고 판사가 묻는다. 그런 제어봉을 사용하는 것도, 불안정한 핵연료를 사용하는 것도, 격납고가 없는 것도 이유는 단순하다. 싸니까. 문제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어느 누구도 제어봉이 그러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결함은 기밀이었다. 

    국가는 체면 때문에 거짓을 말하였다. "누적된 거짓의 빚이 청산될 때까지 진실은 기다린다." 그리고 그 대가가 체르노빌이다. 그것이 발레리 레가소프의 마지막 독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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