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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나리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3. 4. 14:15

    "미나리"가 이런저런 많은 상을 탄 까닭이 궁금했다. 개봉일에 아내와 함께 극장을 찾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들 사이에 약간의 거북함 또는 긴장이 계속된다. 자신의 농장을 수지맞는 사업으로 만들려는 제이콥의 고군부투가 잿더미로 바뀌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결말이 "실패"가 아니라 "아직 성공하지 못함"임은 분명하다.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이 몇 달 동안 한 농부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다면 이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지 싶다. "잘 살아보세"의 성공담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들이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드물지 않았다. 이민 가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살아남기 위해 또는 더 잘 살기 위해 고생하고 다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적어도 나에게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특히 전후 한국인들의 다수가 그렇게 살아왔다. 나는 나대로 그런 관점에서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이 영화에 아무런 감흥을 갖지 못하는 까닭은 내가 그 이야기를 평범하고 당연한 삶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위키백과를 보니, "미나리"가 받은 상의 대부분이 미국 내 협회나 영화제에서 주어진 것이다. "미나리"가 미국인들에게, 어쩌면 그들에게만 감동적인 영화가 아닐까 싶다.

    미국인들의 상당 수가,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원주민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이민자들이거나 그 후손들이다. 출신 국가, 이주한 시대, 그들이 처음에 얻었던 직업과 머물렀던 곳에 관계 없이, 관객들은 저마다 어떤 장면에서 자신들의, 또는 아버지나 할머니가 들려준 경험을 연상했을 것이다. 그들이 나와 다르게 그런 공감을 유별나게 느낀 까닭은 그 흔하고 구차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와 드라마가 이제까지 미국에 거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초원의 집"조차 "전원일기"에 가까운 화목함으로 채워진 드라마이다. 미국의 영화는 영웅적이거나 초인적이거나 기적적이다. 미국의 역사는 실로 그러하고, 그러니 영화도 그럴 만하다. 하지만 실패하거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크게 성공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법이다. 

    "미나리"가 그들에게 생경한 까닭은 그들이 그런 평범한 삶에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는 그저 외면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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