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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친코를 읽고: 집단주의에 대하여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6. 4. 17:06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마 전학년을 통틀어 유일하게, 란도셀을 메고 다니는 여자애가 있었다. 가방이 이뻐서 내가 부러워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란도셀이 이차 세계 대전까지 일본 군인들이 사용하던 배낭과 유사하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황태자에게 선물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하니, 일본 초등학생들이 란도셀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 무려 백 년이 넘었다. 튼튼하여 오래 쓸 수 있다고 하나 무겁고 큰, 게다가 엄청 비싼 가방을 일곱 살 아이에게 지우는 것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모든 부모들이 란도셀을 사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백 년이 넘도록.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우리는 새로운 것들, 특히 기술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영하는 편이다. 한국 전쟁이 끝났을 때 거의 모든 것들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사회심리학자 허태균 교수에 따르면, 한국 전쟁은 우리 사회를 리셋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건물, 도로, 교량 등 모든 것을 새로 지어야 했다. 거의 모든 경험이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비롯된 "빠름"에 대한 강박이 부실 공사로 이어지기도 하고,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진 듯하다. 아무튼 그것으로 신기술에 대한 우리의 높은 수용성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지속적인 빠른 변화가 우리의 관습과 의식까지 바꾸어버린 것일까? 불과 이삼십 년 전에 금기시하던 것들이 이제는 잊혀지다시피 했다. 이를테면 여자들은 자신보다 어린 남자와 사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모든 면에서 우리 삶이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 이제는 아무도 아침을 반드시 먹어야 하고 옷을 이렇게 입어야 하고, 머리 모양을 저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질적 환경의 향상이 개인주의를 촉진했다고 나는 믿는데, 이것이 일본을 설명하는 데에는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1930 년대 도쿄의 거리를 90 년대 서울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일본은 앞서 있었다. 하지만 왜 그들은 아직도 란도셀을 메고, 서류에 직인을 찍고, 여전히 신용카드보다 현금으로 값을 치를까?
머문 날이 겨우 사나흘에 불과했지만, 한국의 전통과 역사가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것과는 달리, 오사카와 자오에서 오래된 것들, 전통적인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느꼈고, 한편으로 그것이 부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변화를 거부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소설 파친코에서 여러 인물들이 "일본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 작가 이민진이 이 인터뷰에서 밝힌 그 이유가 충격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MsyZxPcXoA
"신화와 성공 스토리의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순수함이라는 사회적 기준이 존재한다. ... 일본인이라는 인식에는 법적 지위나 마음가짐에 상관 없이 ... 100 퍼센트 순수 일본인 혈통을 의미한다."
어느 사회나 공통으로 믿는 것이 있다. 그 믿음은 다수에 의해 유지된다. 그 신념을 부정하거나 배척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면 그것이 결국 폐기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세상 여러 곳에서 일어났고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란도셀을 계속 사주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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