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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6. 4. 27. 18:20

    서가에 꽂혀있는 이 책을 꺼내어 펼쳐보니 마지막 페이지의 번호가 1400을 넘어간다.  이 책을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내 경험에 석 달 안에 마치지 못한다면 포기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빌 게이츠가 이 책을 언급해서가 아니라, 저자가 스티븐 핑커이기 때문에 읽자고 마음먹었다. 예상한 대로, 석 달을 넘긴 데다가 (지겹다는 말이다) 마지막 장이 난해하여 200 페이지 가량 남겨두고 그만 접었다.

    스물 몇 해 전에 그의 또 다른 명저 "언어 본능"을 읽을 때 그가 당연히 언어학자이리라 생각했다. 이 책의 저자 소개를 보니 언어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이다. 그가, 그리스 고전을 비롯하여, 이제까지 출판된 모든 문헌을 읽었는지 참고 문헌의 목록이 무려 70 페이지에 달한다.

    책 초반의 내용이 매우 충격적이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고문부터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 빈도와 잔인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일례로 화형이 오래 동안 오락거리였다.  "사피엔스"에서 상세한 논거 없이 우리가 현재 태평성대에 살고 있다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이 책이 납득시킨다. 사람들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은 전쟁이 이차 세계 대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5500만 명이나 죽었으니까. 하지만 전체 인구를 계산하면 결과가 달라진다. 8세기에 중국 당나라에서 발생한 안녹산의 난 중에 중국 인구의 3분의 2에 달하는 3600만 명이 죽었다. 20세기 중반의 인구로 조정하면 무려 4억 2900만 명이 죽은 셈이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세상이 조금씩 좋아진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갖고 있던 여러 의문들에 대한 답을 이 책을 통해 얻었다. 이를테면 "역사학 입문" 시간에 위대한 사상가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그들로 인해 세상이 바뀌는지 교수님이 우리에게 물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 책에 따르면 "그렇다"이다.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교통과 통신의 발달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인이라는 의미에서 우리는 좀 다른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적어도 조선시대 사람들은, 같은 시대 다른 지역, 특히 유럽 사람들만큼 잔인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가 측은지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감정 이입" 능력을 서구에서는 불과 최근 수십 년 사이에 갖게 되었다고 보는 게 그다지 억지스럽지 않다.

    우리는 일 년에 살해되는 사람의 수가 10만 명당 0.5 명에 불과한 호시절에 살고 있다. 이 숫자가 3만 되어도 밤거리를 마음 놓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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