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릿지대 경제학과 교수인 장하준 교수가 쓴 책이다. 이 책은 오늘의 세계를 비관적으로 보던 내게 위안과 희망을 준다. 여기에 몇 구절을 옮기겠다.
42-43 쪽
고용 삭감은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는 낳는다. 노동력 부족은 노동 강도의 강화로 이어지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이 지치면 실수가 잦아져 결국 제품의 품질이 저하되면서 기업의 평판 역시 나빠진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끊임없는 해고 위협으로 인해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 노동자들이 해당 기업에 특화된 기술을 익히는 데 필요한 시간 투자를 꺼리게 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기업의 생산 잠재력을 훼손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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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주주들이 기업의 법적 소유주이기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러 이해 당사자 중에서 기업의 장기적 생존에 제일 관심이 없는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주주들이야말로 기업에서 가장 쉽게 손을 뗄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55쪽
부자 나라의 어떤 개인이 비슷한 일을 하는 가난한 나라의 개인보다 실질적으로 생산성이 월등히 높은 분야에서조차, 그 격차는 개인의 능력 차라기보다는 시스템의 차이에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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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조직, 더 나은 제도와 물리적 인프라를 가진 경제 환경에서 살기에 그런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수세대에 축적된 집단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61쪽
전기세탁기와 전기다리미가 도입된 이후 17킬로그램에 달하는 빨래를 세탁하는 시간이 4시간에서 41분으로 줄어들어 거의 6분의 1로 단축되었고, 이를 다리미질하는 데 드는 시간도 4시간 30분에서 1시간 45분이 되어 5분의 2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시설은 물을 긷는 데 들이는 시간을 필요 없게 만들었다. 진공청소기는 빗자루질과 걸레질을 해야 했던 옛날에 비해 시간은 훨씬 적게 쓰고도 집안을 몇 배나 청결하게 만드는 데 이바지했고, 가스(혹은 전기)레인지와 중앙 난방 시스템은 난방과 조리에 필요한 땔감을 구하여 불을 피우고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며 사용 후 청소하는 데 필요한 시간들을 엄청나게 줄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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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수도, 가스와 더불어 가전제품의 등장으로 가사 노동 부담이 줄어들면서 여성들이 삶이 완전히 변모했고, 그로 인해 남성들의 삶도 크게 달라졌다.
65쪽
전보의 발명으로 인해 대서양을 건너 소식을 전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이 2주일에서 7-8분으로 줄었으니 2500배가 넘게 빨라진 셈이다.
71쪽
당시 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철강 업체였던 고베 철강의 중역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신사는 그것이 정부 조직이냐, 민간 기업이냐를 떠나서 현대식 관료 체제 자체를 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꾸짖었다.
``미안하지만 여러 경제학자분들께서는 실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금속 공학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고, 고베 철강에서 지난 30년간 일한 덕에 철강 제조에 대해 제법 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 저도 회사 규모가 너무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회사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반 정도 이해하면 다행입니다. 회계나 마케팅 분야 출신의 다른 임원들은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야 하겠지요. 그럼에도 이사회에서는 직원들이 올린 사업 계획을 대부분 받아들입니다.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지요.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가정하고 직원들의 동기를 사사건건 의심하기만 한다면 회사는 마비되고 말 겁니다.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업 계획을 검토하려고 애만 쓰다가 말 테니니까요.
76쪽
노동자들의 행동 동기에 내재된 이런 복잡한 특성을 깨닫지 못한 대량생산 시대 초기의 자본가들은 작업 속도와 강도를 조절할 여지를 노동자들에게 주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하면 일을 게을리할 수 없기 때문에 생산성이 극대화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율성과 존엄성을 빼앗긴 노동자들은 얼마 가지 않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일을 했고 심지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126쪽
지금이야 믿기 어렵겠지만 세계의 공장이라는 말은 원래 영국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 영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산업혁명을 수행한 이래 19세기 중반에는 세계를 압도하는 산업 강국으로 군림했다. 당시 영국은 산업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넘쳐 자국의 무역을 완전히 자유화해 버릴 정도였다. 1860년에는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20퍼센트, 1870년에는 세계 제조업 제품 무역량의 46퍼센트를 차지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에 비해 중국이 세계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기준으로 대략 17퍼센트에 불과하다.
220쪽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기업가 정신이라는 것은 점점 더 공동체적으로 함께 이루어 내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 에디슨이나 빌 게이츠처럼 특별한 인물들도 수없이 많은 제도적, 조직적 지원을 받지 않았으면 오늘날과 같은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228쪽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 다른 것도 아닌 자산가격결정에 대한 연구로 상을 받은 사람들마저 금융 시장을 읽어 내지 못하는 마당에 어떻게 `사람은 늘 자기에게 가장 이로운 최선의 선택을 하는 만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된다.'고 가정하는 경제 원리에 입각하여 세상을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냈던 앨런 그린스펀조차 의회 청문회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듯이 ``기업들, 특히 은행들의 이기심이 주주와 기업 자본금을 가장 잘 보호해 줄 것이라고 가정한 것은 실수"였다.
244-245 쪽
교육을 오로지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로만 간주한다면, 이런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갈수록 노동자들의 평균 교육 수준을 낮추어도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경제가 발전할수록 기계가 더 많은 지식과 기술을 대체하게 된다. 그에 따라 개별 노동자들이 과거에 같은 일을 하던 사람에 비해서 자기가 하는 작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경제 전반의 생산성은 향상된다.
250 쪽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구성원 개인의 교육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각 개인을 잘 아울러서 높은 생산성을 지닌 집단으로 조직화할 수 있느냐에 있다.
285-286 쪽
만약 부모가 읽지 못하거나 오랜 시간 일해야 한다면 숙제를 도와줄 사람도 없다. 반면 중산층 아이들은 부모가, 부유층 아이들은 가정교사가 옆에서 숙제를 도와줄 것이다. 사실 숙제를 봐 줄 사람이 있는지에 상관없이 가난한 집 아이들은 동생들을 보살피거나 염소를 데리고 나가 풀을 먹이느라 숙제할 시간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난한 부모한테 태어난 것이 무슨 벌을 받을 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모든 아이들이 최소한의 음식과 음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숙제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
이 말은 아이들에게 공정한 기회 비슷한 것이라도 확보해 주려면 부모 소득을 최소한 어느 정도는 균등하게 맞춰 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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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극히 일부만 이런 식으로 옮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여기에 인용한 것들만이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앞뒤 내용을 잘라먹었기 때문에 곡해를 낳을 수도 있다. 그저 내가 인상깊게 본 부분일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드물게 흥미롭고 풍부한 정보로 가득찬 책이다. 요지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이 틀렸다는 것이다.
원서가 정말 영어인지 모를 만큼 번역이 매끄럽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이 책은 훌륭하다. 명백히 오자라고 할 수 있는 곳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 교열도 매우 꼼꼼하게 성의있게 보았다는 느낌이 든다.
278 쪽에,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일본식 정부 주도 자본주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남한은 일본보다 더 철저히 정부 주도 자본주의를 실시했다'' 문장만이 내가 유일하게 발견한 뜻이 잘 통하지 않는 문장이다.
요즘에 나온 모든 책에 갖는 불만이지만, 자간을 약간 더 넓히고 행간을 약간 더 줄였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눈에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다. 윤글꼴이 쓰인 것 같은데, 이 책은 쉽게 설명하므로 다소 빨리 읽을 수 있다. 그 속도에 장애가 되지 않게 적당한 굵기의 글꼴이 쓰인 것 같다.
나의 독서량이 많지 않은 탓이 더 크겠으나, 이렇게 여러모로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진 책은 매우 드물지 않나 싶다.
저자의 또다른 유명한 저서인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사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