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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바위산행 2024. 10. 7. 09:09
설악산 소공원 입구까지 2.3 킬로미터 남겨둔 지점에 넓은 무료 주차장이 있다. 시월이 산객들이 가장 많은 철인지라 거기에 차를 댔다. 길 건너에, 이미 오래 전에 폐업한, 여러 숙박업소들이 있다. 중학교 수학여행의 마지막 밤을 그 중 한 곳에서 보낸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이후 처음으로, 정확히 사십 년만에, 아내와 함께 흔들바위를 찾았다.대여섯이 줄다리기 하듯 박자를 맞춰 밀면 바위가 흔들린다고 하는데, 정말인지 모르겠다. 소년이었을 때에도 지금도 혼자 힘만으로는 역부족인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흔들바위에서 울산바위 꼭대기까지 약 1 킬로미터를 올라야 한다. 그녀를 흔들바위에 남겨두고 홀로 출발했다. 예상보다 훨씬 힘겨웠다. 롯데타워에 2917 개의 계단이 있다고 하는데, 울산바위의 계단이 그보다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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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틀과학적이거나 기술적인 2024. 10. 4. 09:48
재봉틀을 흔히 미싱이라 하는데, sewing machine의 machine을 일본인들이 '미싱'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내 어머니가 사용하던 재봉틀의 원래 모습이 이와 비슷했다.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발틀에 들어가 자동차 운전대 돌리듯 바퀴를 돌리며 놀곤 했으니, 그 나이가 나와 엇비슷할 것이다. 내가 제대할 무렵인가 재봉틀이 헌 집을 버리고 새 서랍장으로 들어갔다.재봉틀이 놀라운 여러 매커니즘들로 이루어져 있다. 백미는 북집이 반 바퀴씩 돌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바늘에 걸린 윗실을 잡아채 밑실에 걸어주는 것이다.애착 인형만큼 강하지 않지만, 쓰지 않더라도 내가 재봉틀을 물려받으리라 작정했었다. 얼마 전에 어머니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하여 서랍장에서 발틀까지 뜯어왔다. 두세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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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왕성폭포산행 2024. 10. 2. 09:29
지난 밤에 이미 산행을 채비하여, 두 개 물병에 물을 채우고 나니 더 챙길 것이 없었다. 네 시 반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내를 깨웠다. 다섯 시 전에 출발하리라 기대하였지만, 늘 그랬듯이 그녀의 늑장 때문에 다섯 시 십 분을 넘겨서 차에 올랐다. 설악산소공원까지 가는 내내 그녀가 시체처럼 잠에 빠졌다.여덟 시를 조금 넘겨 도착했을 때, 예상한 대로 주차장이 벌써 거의 다 채워져 있었다. 공원 입구 앞에, 기념품도 파는 식당에서 한참을 기다려 그녀가 주문한 카페 라떼를 받았다. 쌍천을 건너는 다리로 향하면서 그녀가 한 모금 마시고 내게 건넸다. 며칠 묵은 탄 누룽지에 녹은 아이스크림을 섞은 것과 같은 맛이다. 커피 기계가 고장났다 보다. 그 영감님이 만들 줄 모르든가. 주저 없이 버렸다.비룡폭포까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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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kuWiki와 Andreas GohrTeX과 친구들 2024. 8. 21. 09:21
몇 달 전에 도입한 DokuWiki에 크게 만족하여, 몇 푼 기부하고자 도쿠위키 웹 사이트를 방문했다. Donation 페이지에서 One-Time Donation via Paypal을 클릭했다. 연결된 PayPal 페이지에서 보이는 화폐 단위가 달러가 아니라 유로이다. 저자가 누구인지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Andreas Gohr라고 한다. 그래서 DocuWiki가 아니라 DokuWiki라 지었나 보다.그의 사이트(https://www.splitbrain.org/projects)에서 그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목록을 볼 수 있다. Geek이란 말에 들어맞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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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선녀탕 계곡산행 2024. 7. 15. 09:52
폭포들만 구경하고 내려가려 했다. 여러 폭포들을 지나, 출발지인 남교리 주차장까지 5.3 킬로미터, 그리고 대승봉까지 3.3 킬로미터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나기 전까지, 딱히 대승령까지 갈 생각이 없었다. 다만 그렇게 멀지는 않다 여겼다. 하지만 두어 시간 뒤에 가까스로 능선에 도달했을 때, 실망스럽게도 그곳이 대승령이 아니었고, 1.3 킬로미터를 더 가야 했다. 잠시 숨을 고른 뒤에 300 미터를 더 갔다. 대승령까지 완만한 내리막처럼 보였지만. 돌아오는 길이 몹시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발길을 돌렸다. 내려오는 길이, 이상하게도, 예상보다 길었다. 주차장에 이르러 내 아이폰을 꺼내 건강 앱을 열었다. 이정표대로라면 내가 걸은 거리가 15 킬로미터 안팎일 것이다. 하지만 앱이 보여준 거리는 19.5 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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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x와 xsltTeX과 친구들 2024. 4. 18. 10:15
인디자인은 xml 내보내기/가져오기 기능을 제공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 기능을 활용하는 jsx 스크립트를 오래 전에 퇴사한 친구가 만들었다. 그 스크립트를 고쳐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xml 파일로 저장할 때 이미지 파일들의 경로가 절대 경로로 되어 있는데,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의 컴퓨터에서 xml 파일을 불러들일 때 이미지들을 다시 링크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번거로움이 발생한다. 그러니까 xml 파일을 저장할 때 이미지 경로를 상대 경로로 바꾸어 달라는 것이다. 인디자인은 이 기능에서 xslt를 지원한다. tokenize()를 비롯한 여러 시도 뒤에 인디자인이 XSLT 2.0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tokenize()를 대신할, 정확히 말해 슬래시를 기준으로 재귀적으로 문자열을 잘라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