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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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8. 9. 12. 14:40
1930 년대에 지금의 트렁크와 같은 짧은 속옷이 등장했다고 한다. 삼각 팬티는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속옷을 입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았는데 예상과 달리 속옷에 대한 일목요연한 글을 찾지 못했다.샅을 가리거나 감싸는 옷을 loincloth라고 한다. 저런 옷은 고대 이집트부터 여러 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자들은 가슴을 천으로 감싼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저 의복은 속옷이 아니다. 따뜻한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저렇게 입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추운 지방에서 입는 속옷도 대개 어디에서나 저것과 대동소이할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속옷을 입지 않는 (아니, 못 입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입고 있다면 저렇게 간단한 형태이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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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읽는 동안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8. 8. 2. 17:57
고요함이 찾아옴과 동시에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난다. 당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사라질 뿐 아니라 당신이 응시하고 있던 것도 사라진다. 마치 물컵에 담긴 아스피린이 녹아버리듯 당신의 마음을 녹여버린다. 검은 활자들은 무대에서 사라져버리고 생각으로, 이미지로, 목소리로, 그리고 소리로 바뀌어 등장한다. 즉 당신을 둘러싼 사물이 사라지고 책 그 자체가 전혀 보이지 않게 되면서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는다. 이런 마법이 성공할 때야 비로소 글의 내용이 독자의 마음 속으로 바로 흘러들어간다.헤라르트 윙어르, 최문경, 2013, 워크룸 프레스타이포그래피가 미학과 심리학의 영역에 걸쳐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타이포그래피는 오로지 심리학적 그리고 인체공학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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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르스키 헬리콥터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8. 7. 23. 09:23
지난 토요일 밤에 아내와 함께 터키 영화 "아일라"를 보았다. 숲 속 수십 구의 시체들 틈에서 발견한 아이에게 슐레이만 하사는 달을 뜻하는 Ay를 따서 Ayla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아일라가 영화의 대부분에 등장하기 때문에 아일라를 연기한 김설에게 힘겨운 작업이었을 것 같다.나의 호기심을 일으킨 건 터키군 캠프 위를 나는 서너 대의 헬리콥터였다.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헬리콥터가 등장한 적이 있었나?인터넷을 뒤져보니 러시아 출신 시코르스키가 개발한 H-19 또는 (YH-19) 시리즈가 미국 육군, 해군, 공군에 차례로 도입되었고, 그 직후인 1951년에 한국 전쟁에 파견되었다. 부상병 수송과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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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me talk to a shtrominer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8. 5. 25. 13:48
칼 세이건이 혜성과 관련된 자신의 일화를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이렇게 소개한다. 1957 년에 대학원생으로 시카고 대학의 여키스 천문대에 있을 때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Lemme talk to a shtrominer.""Can I help you?""Well, see, we're havin' this garden party out here in Wilmette, and there's somethin' in the sky. The funny part is, though, if you look straight at it, it goes away. But if you don't look at it, there it is." 아마 혜성이리라 그가 답한다. "Wash' a comet?""A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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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공만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8. 2. 3. 07:34
아내가 출판계에 한 발을 담고 있어서 이래저래 책들을 자주 얻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흥미로운 책은 만나기 어렵다. 출판사들의 사업 방식은 패션 회사의 것과 유사한 게 아닌가 싶다. 패션 회사들이 의류 브랜드를 마구 만들어내듯이 독자들이 뭘 좋아할지 모르니 '하나 얻어걸려라'는 심정으로 출판사들이 마구잡이로 책들을 발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제 "야밤의 공대생 만화"를 발견했다. 일전에 페이스북 덕에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책을 눈여겨 보지 않았을 것이다. 출판까지 되었는지 몰랐다. 이 책은, 이 책에서 언급되듯이, 내가 고등학생일 때 나를 불행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뉴턴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고등학생인 아들넘은 당연히 '무지 재미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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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인류사적 패배에 대한 나의 가설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8. 1. 9. 21:54
그녀가 혼잣말 하듯이 내뱉었다. “맥주 마시고 싶다.” 현재 시각 23시. 못 들은 체했다. “맥주 마시고 싶어.” 난 자고 싶다. 저항할까 수 초 동안 고민하다가 곧 패딩을 걸쳤다. “감자칩도 사와.” 십수 년 동안 벌인 그녀와의 권력 쟁투에서 내가 패배했음을 시나브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신 안정과 평화가 집안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왜 나는 패배했을까? 지배권에 미련을 두고 있는 동안에는 나와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싸움이 끝나자 이제 그 까닭이 보인다. 수많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행복이 이루어지듯이, 한두 가지 우위에 있는 기술만으로는 싸움에서 승리를 차지할 수 없다. 그녀에게 승리를 안겨준 결정적인 특질은 지구력이다. 물리적 지구력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내가 승복할 때까지 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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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의 법칙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7. 7. 20. 16:19
육개 월 안에 언어를 배우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이 동영상을 보다가 지프의 법칙이 떠올랐다. 이 연사가 말하듯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들의 98%가 3000 단어라고 한다. 이 연설은 어떠할지 궁금했다. 그래서 영어 자막을 내려받았다. ( 그 방법에 대해서는 https://www.quora.com/Is-there-a-way-to-extract-the-automatically-generated-subtitles-in-YouTube를 보시라.) 태그를 날린 뒤에 단어 수를 헤아려 보니 3049이다. 18분 동안 170 단어를 말한 셈이니, 보통 사람들보다 약간 빠르게 말한 편이다. 중복된 단어를 없애니 (아래에 첨부한 ChrisLonsdale_dic.txt를 보시라) 그 수가 732로 줄어든다. 숫자를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