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7. 2. 3. 17:22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조선 민중의 일상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반가웠고, Kitto의 The Greeks를 읽을 때처럼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머리 속에 희미하게나마 그려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그다지 충족되지 않았다. 각 주제에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을 터인데, 저자들이, 마치 할당 업무를 해치우듯이, 무성의하게 급히 써낸 것처럼 보인다. 낯선 용어들이 많은데, 각주는 고사하고 한자 병기도 없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할 수 없다. 그리고 저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불필요하게 자신들의 감성을 담았다.그래도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어 덜 아쉽다. 군역에 들어갈 때 무기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 따위.
-
이것이 생물학이다.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7. 1. 17. 10:45
이제까지의 나의 독서 경험이 첫 문단을 읽는 것만으로 그 책을 제대로 판별하는 직관을 내게 길러 주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읽었을 때, 이 책이 재미없으리라 짐작했다. 그래도 이 책이 명저라는 세평을 믿고 주문했다. 나의 짐작도, 세평도 틀리지 않다. 재미없는 명저이다. 재미없는 이유는 명작인 이유와 동일하다. 에른스트 마이어가 (생물들에 대한 호기심을 가볍게 풀기를 기대하는) 일반 대중을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마이어가 기대한 독자들은 다른 생물학자들, 다른 과학자들, 특히 물리학자들, 그리고 철학자들이다. 그의 메시지는 이러하다. 물리학이 과학의 전부가 아니다. 단순한 원리로 환원하여 만물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물리학적 기대이다. 분자 수준에서는 물리학적 설명이..
-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6. 10. 12. 10:28
어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 내게 플라톤주의적 성향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나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웠던 나의 호불호가 이해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들 대부분이 처음에 나를 아주 삐딱하거나 냉소적인 사람으로 인식한다. 나는 그런 상황을 억울하다 여기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개선할 수 있을 것 같다.나는 치와와 같은 작은 종의 개들을 싫어한다. 왜 싫어하는지 몰랐다. 이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으랴만, 나는 좀 크게 연연하는 편이다. 예를 들자면, 많은 사람들이 갓난 아기나 어린 새끼 동물들을 어여삐 여긴다. 그리고 ..
-
Sapiens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6. 9. 25. 17:24
"Guns, Germs, and Steel"이 1997 년에 발간되었고, 그로부터 8 년 뒤인 2005 년에 한국어본 "총, 균, 쇠"가 발간되었다.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의 영어본이 2014 년에 발간되었고, 그 이듬해에 한국어본 "사피엔스"가 발간되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제 불과 마흔 살인데, "총, 균, 쇠"가 가장 큰 자극을 준 것들 중의 하나라고 밝혔다. 학부 시절에 내가 "총, 균, 쇠"를 접했다면, 아니면 내가 더 늦게 태어나 지금 대학에 다니면서 이 책들을 접했다면, 학자의 길을 가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피엔스"에 의해 계몽되었다. 인문학은 하라리의 방법을 따라야 한다.
-
신분 세탁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6. 9. 16. 09:45
대부분의 평민들이 족보를 사서 신분을 세탁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그들 가운데 정작 자기 가문이 그런 부류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구태여 하지 않는다. 조선 초기에 인구 중 양반의 비율이 10 퍼센트에 불과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가면서 군역을 피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족보를 사거나 만들었을 것이다. 족보가 1500년대 이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하니, 박혁거세를 시조로 하는 것과 같은 날조가 흔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모든 사람들이 성씨와 족보를 갖게 되었다고 하니, 양반 가문임을 입증하기 위해 유교 문화가 갈수록 더 팽배해졌을지도 모르겠다.이번 추석에 내려가면서 우리 집안이 양반 가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첫째, 우리 집안은 본관으로 삼는 고장에서 아..
-
The Revenant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16. 5. 7. 18:07
드디어 끝냈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Hugh Glass 시대의 어휘와 표현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거의 매 줄을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 이 소설은 놀라운 이야기에 못지 않게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하다.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영화는 그것대로, 소설은 이것대로 훌륭하다. 1820 년대에 개척자들은 중부까지 진출했고, 그 탐험에 의지하여 지도의 세부를 채워나갔다. 볼거리가 없다고 하지만, 글래스가 이용한 미주리 강과 플랫 강을 언젠가 따라 걸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