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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값에 대하여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6. 8. 12:19
일반적으로 제품의 가격은 제조비(경상비도 포함한다고 치자)에 이익을 더하여 정해진다. 제조사들은 이익 비율을 어떻게 정할지 고민할 것이다. 제조비가 많이 들면 판가를 높여야 하는데 그러면 대신 덜 팔리기 마련이다. 제품이 많이 팔리면 제조 단가가 줄어드니 가격을 낮출 수 있다. 경영에 문외한이지만,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그래서 시장 가격을 주도하는 판가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삼성과 애플은 분명 훨씬 더 싼 가격에 스마트폰을 내놓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비싸도 잘 팔리는데 굳이 값을 낮출 이유가 있겠나. 팔리지 않는다고 마냥 가격을 낮출 수 없다. 겨우 제조비만 회수할 수 있다면 그 물건을 만들 이유가 없다. 나는 책을 살 때 가격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다. 책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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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친코를 읽고: 집단주의에 대하여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6. 4. 17:06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마 전학년을 통틀어 유일하게, 란도셀을 메고 다니는 여자애가 있었다. 가방이 이뻐서 내가 부러워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란도셀이 이차 세계 대전까지 일본 군인들이 사용하던 배낭과 유사하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황태자에게 선물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하니, 일본 초등학생들이 란도셀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 무려 백 년이 넘었다. 튼튼하여 오래 쓸 수 있다고 하나 무겁고 큰, 게다가 엄청 비싼 가방을 일곱 살 아이에게 지우는 것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모든 부모들이 란도셀을 사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백 년이 넘도록.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우리는 새로운 것들, 특히 기술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영하는 편이다. 한국 전쟁이 끝났을 때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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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폰트테크니컬 라이팅 2021. 6. 4. 14:54
지방 정부들이 저마다의 로고와 표어를 갖게 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도시가 이제는 관광 브랜드이기 때문에, 너무 자주 바꾸지 않는 한, 그것을 예산 낭비라고 할 수 없다. 몇 해 전부터 폰트를 만들어 내놓는 지방 정부들이 늘고 있다. 완도군은 완도희망체를 제목용으로, 완도청정바다체를 본문용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방 정부들이 배포하는 폰트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가 내가 아름다운 글자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1) 세리프, (2) 세리프 볼드, (3) 산세리프 (4) 산세리프 볼드 문서를, 특히 매뉴얼을, 만드는 데에 이렇게 적어도 네 가지 폰트를 갖고 있어야 최선의 선택을 위해 다양한 조합을 시도할 수 있다. 산세리프는 제목보다는 표, 예시, 또는 경고의 가독성을 높이는 데에 요긴하다. 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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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친코를 읽고: 정체성에 대하여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6. 2. 12:26
한국계 미국인인 데이빗 강 교수가 이렇게 말하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그와 같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g2bAa3UfkOQ 독일은 다시 전쟁을 일으켰으니 나누자라고 했고 ... 왜 일본이 아닌 한국을 나눈 것일까요? 일차 세계 대전과 이차 세계 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한국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분명 김일성인데, 탱크를 비롯하여 절대적으로 우세했던 그 무기들을 그는 어떻게 장만했을까? 한국 전쟁을 제국주의 연장전이나 대리전으로 보는 것에 대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분단되지 않았다면, 소련에 의해 공산 국가가 되었을지도, 아니면 베트남처럼 오랜 내전을 겪었을지 모른다. 어느 것도 다른 것보다 나은 결과라 말할 수 없다. 공산 국가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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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에서 높임말테크니컬 라이팅 2021. 6. 2. 09:49
공적 문서들이 격식 있는(formal) 언어로 작성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를테면 영어 문서에서 "Don't" 같은 축약을 쓰지 않아야 한다. 우리말에서도 "하였다"가 "했다"보다 더 정중하게 들린다. 이와 같은 규칙들은 사소하여 따르기 어렵지 않다. 나를 오래 동안 괴롭혔던 문제는 높임말이었다. 다른 여러 언어들에서도, 이를테면 독일어에서 "du"와 "Sie" 같은, 경어법이 있다고 하나, 한국어와 일본어처럼 다양하고 정교한 높임 어미들을 갖고 있는 언어들은 없는 것 같다. 일본어는 한국어보다 덜 다양한 어미들을 갖고 있지만 대신 겸양어 표현들이 많다고 한다. 높임말을, 문서에서 사용해야 하는, 공적 언어로 간주할 수 있을까?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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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친코를 읽고: 집단 의식에 대하여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2021. 6. 1. 12:22
3 주만에 5백 페이지가 넘는 Pachinko를 다 읽었다. 이것이 내게는 대단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영어로 된 책을 한 달 안에 끝낸 적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Cosmos 같은 어려운 책은 말할 것도 없고, 깊이 매료되었던 Revenant도 마치기까지 두세 달 넘게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TV 드라마에 빠진 할머니들이 하듯이,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아내에게 선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들려줬다. 영화광이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하는 것과 같은 추측을 파친코는 허용하지 않는다. 선자가 고 한수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파친코 표지에 실린 여러 언론의 찬사들 중 내가 가장 공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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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위해 UI 문자열 짝짓기테크니컬 라이팅 2021. 5. 31. 11:15
번역을 앞두고 고객사에 UI 스트링 파일을 요청하여 받았다. STATUS0=정상 STATUS1=등록 STATUS0=正常 STATUS1=登録 프로그램이 파이썬으로 작성된지라 스트링 파일이 ini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각 문자열에 고유한 번호나 코드가 부여되어 있다면 그 형식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저 두 파일을 엑셀로 불러들여 다음과 같이 만들고 번역팀에 전달하면 내 할 일은 끝이다. 정상 正常 등록 登録 엑셀에서 문자열들을 편집하는 것이 그다지 성가신 일이 아니나, 두 파일에서 같은 순서로 문자열 아이디가 나열되는 경우가 드물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실수를 피하고 중복되는 문자열들을 제거하고자 오늘 파이썬으로 엑셀 작업을 대신할 스크립트를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스크립트가 아니고, 한국어 문자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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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를 한글로 표기하자면테크니컬 라이팅 2021. 5. 26. 11:35
Windows를 한글로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 윤여정이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뒤에 이렇게 말했다. "내 이름은 여정 윤이다. 유럽 사람들 대부분이 나를 '여영'이라고 부른다. 몇몇 사람들은 나를 '유정'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오늘밤 모두 용서하겠다." 나는 한때 성과 이름을 뒤집어 말하는 것이 과잉 친절이거나 사대주의적이라고 생각했다. 성을 대문자로 표기하거나 (YI Sunsin) 성 뒤에 쉼표를 쓰는 (Yi, Sunsin) 방법이 쓰이기도 하는데, 표기법이 많아지면 그만큼 혼동이 커진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동아시아(한국, 중국, 일본), 동남 아시아(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일부 지역, 그리고 특이하게도 헝가리가 "성--이름" 순서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문화가 "이름--성"의 순서를 사용하니..